BGM: Hisaishi Joe - 첫사랑 (드라마 태왕사신기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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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樂園)
3.
낙원
#시리같은일상(?) #폭군무제 #통비 #궁중물
강팔춘 @Jinagaseyooo
* 약간의 폭력적인/잔인한 묘사가 있습니다. 자세한 묘사는 하지 않았지만 주의해주세요.
* 급전개 죄송합니다ㅠ 사랑합니다ㅠ
「무제 13년, 황제가 웬 사내에게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더라. 출신도, 혈통도 모르는 그 사내를 ‘통비’라고 부르며 비의 자리에 책봉하고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밤낮으로 그를 아끼더라. 눈이 멀어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게 된 황제는 통비를 입에 담은 신하들을 간신이고 충신이고 가리지 않고 목을 베었으며 온갖 금은보화를 비에게 바쳐 온 백성들의 원성을 샀더라.」
[선기령연] 낙원(樂園)
붉은 새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성령연의 인생에 나타났다. 그 날은 성령연의 즉위식 바로 전날이었고, 사람 많은 곳이 지겨워 그밖에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에 잠시 몸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뜻밖에 궁 안 어딘가에 비밀스럽게 숨겨진 장소에는 이미 불청객이 있었다.
황손만이 출입할 수 있는 후원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 빨간 열매를 와구와구 따 먹는 그의 등 뒤에는 붉고 작은 날개가 포르르 떨렸다. 성령연은 그가 옆에 빨갛고 파란 열매를 쌓아두고 맛있게도 먹는 모습을 언제까지고 가만히 쳐다보다 말했다.
‘맛있나?’
여간 놀란 것이 아닌지 기침을 하면서도 열매를 꿀떡꿀떡 삼키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귀여웠다. 답지 않게 자비를 베풀어 물이라도 주려던 차, 작은 새는 연못의 물을 허겁지겁 삼켰다. 빨간 날개에 붉은 머리, 붉은 눈은 옛 서적에서 보았던 ‘주작’임이 분명했다. 한 가지 미심쩍은 것은 온 나라를 불바다로 만들고는 마지막 남은 주작마저 사라졌다는 기록 탓이었다. 이러한 까닭에 나라에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다는 옛 영광은 금세 불길한 것으로 전락했다.
‘흠……. 거기 독 들었는데. 주작이라 괜찮나?’
‘도, 독?’
독이라는 말에 놀라 눈물을 글썽이는 작고 어린 새가 정말로 주작인지는 의심이 되었으나 이마에 난 붉은 표식은 그가 주작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정말로 주작이라면 웬만한 독에는 끄떡없을 터인데 허둥지둥하는 꼴을 보아하니 어린 개체임이 분명했다. 괜히 웃음이 나고 더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여기서 시끄럽게 울음이라도 터뜨리면 곤란해질 것이 분명하여 마침내 입을 열었다.
‘거짓말인데.’
‘정말이야…?’
새는 그제야 붉은 날개를 파르르 떨며 훌쩍거렸다. 빨개진 눈을 치켜뜨며 ‘이이익…!’ 하며 성을 내는 것이 속았다는 것에 매우 분한 모양이었다. 그는 한참이고 성령연을 노려보더니 날개를 힘차게 퍼덕거리며 공중으로 사라졌다. 성령연은 모처럼 편하게 웃으며 놀릴 수 있는 상대가 쥐도 새도 없어졌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한 나라를 잿더미로 만들 만큼 위험한 새는 의외로 닭도 아닌 병아리를 닮아 있었다.
이후, 즉위식이 무사히 지나가고도 3일을 내리 그곳을 찾았다. 아주 어렸을 적, 그리고 즉위식 전날 찾은 것이 다인 그곳을 이렇게 열심히 찾은 것은 오직 어린 새 때문이었다. 성령연은 그 새의 이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어린 새를 다시 마주친 것은 그로부터 3일이 지난 뒤였다. 후원을 거닐던 그는 어린나무에 앉아 저를 내려보고 있는 새와 마주쳤다.
‘갈 곳이 없어서…….’
‘이름은?’
‘없는데…….’
‘통, 샤오통.’
그렇게 붉은 새는 통이 되었다. 성령연은 종종 그를 샤오통, 혹은 병아리라고 불렀고 통은 그를 링위엔이라고 불렀다. 성령연은 통을 몰래 황제의 침실에 거뒀다. 성령연은 통에게 밖으로 나가지 말 것을 당부했으며 나가더라도 성령연을 제외한 타인에게 날개와 이마의 표식을 절대 보여주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그리하여 궁에는 무제 셩샤오가 웬 사내를 궁에 몰래 들여 남색을 즐긴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게 된다.
*
“폐하, 동촉하여 주시옵소서.”
“후사를-”
“폐하, 지금 궁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사옵니다. 출신도 모르는 비천한 사내 한 명을 끼고 남색을 즐기신다는-”
“다시 말해 보아라. 짐이 뭘 했다고?”
순식간에 싸늘해진 대전에서 신하들은 고개를 숙인 채 눈치를 보기 바빴다. 요 며칠 피바람이 불지 않아 슬슬 황후를 들이라는 상소문을 읊으려던 차였다. 그렇다면 황제의 옆을 꿰찬 사내를 짚고 넘어가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황제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금반지를 낀 손으로 의자를 톡톡 두드릴 뿐이었다. 침묵이 감도는 대전에서 결국 신하들 몇 명이 황제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떨었다. 턱을 괴어 기울어진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황제의 검은 눈은 잿더미처럼 새까맣다. 그가 일어서자 면류관을 장식한 옥들이 서로 부딪혀 짤랑거리는 소리가 유독 음산했다. 그는 붉은 계단을 하나하나 천천히 내려오며 칼날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짐이 말하라 하지 않았느냐. 입이 붙어버린 건가?”
“폐, 폐하, 소신이-.”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채 말을 잇지 못한 이의 목이 복도로 힘없이 떨어졌다. 셩령연은 방금 사람을 죽인 사람 같지 않은 무료한 얼굴로 칼을 무성의하게 바닥에 버렸다. 바닥의 색보다 짙고 강렬한 붉은 액체가 바닥을 가득 적셨음에도 황제의 옷은 한 방울도 튀지 않고 깨끗했다. 그가 죽은 이의 옆에 서 있던 두 대신을 쳐다보자 그들이 움찔하며 엎드려 벌벌 떨었다.
“그대들이 원하는 대로 황후를 들이도록 하지.”
*
“무제 셩샤오도 한물갔군.”
“사내 따위에 미쳐 눈에 뵈는 게 없는 게지.”
“어떻게 한 태양만 따르겠나. 그렇지 않은가?”
*
무제 13년, 황제가 총애하는 통은 공식적으로 그의 비가 되었다. 수많은 반대와 상소에 출신도 불분명한 통은 황후는 되지 못했으나 어쨌든 황제와 한 이불을 덮는 것은 그였으므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혼례는 황후와의 혼례가 아니었음에도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화려했고, 그 어떤 혼례보다도 묘한 기운이 맴돌았다.
주작은 성장도 빠른 것인지 14년 만에 성령연의 키를 따라잡아 골격도, 키도 훤칠하게 큰 붉은 새는 날개를 꺼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붉어진 얼굴을 붉은 천으로 가리자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붉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붉은 비단옷으로 온몸을 치렁치렁하게 감싼 성령연은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자신의 병아리의 손을 꼭 잡고 높은 계단을 하나하나 올랐다. 한 줌 같던 손이 어느새 그보다 커져 창백한 하얀 손을 감싸고도 남았다.
“병아리야 날개 나왔어.”
“뭐? 저, 정말?”
“거짓말이야.”
“링위엔!”
“앞을 봐.”
이이익…! 하며 화를 내는 것은 달라지지 않아 옛날과 똑같았다. 사람이 아닌 통에게는 이러한 관습이 불편한 법도 한데 그저 마주치니 좋다고 눈웃음을 살살 짓는 이에게 입을 맞춰 귀애해주고만 싶었다. 붉은 천 속에 숨겨진 눈이 얼마나 어여쁘게 휘어지는지, 붉은 입술이 어떻게 벌어지며 어떻게 조잘거리는지 따위가 그려져 괜히 가슴이 답답해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링위엔! 가만히 통을 보고 있는 것이 이상했는지 성령연을 작게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맞절을 올렸다. 서로의 피를 섞은 술을 삼키고, 통의 머리에 장식을 올려주며 헝클어진 머리를 살짝 뒤로 넘기자 드러난 귀가 붉게 물든다. 병아리야 부끄러워? 놀리듯 가볍게 말하며 통의 손을 가져와 약지를 문지르며 옻칠이 된 검은 함을 열어 가락지를 끼웠다.
“샤오통, 날개 꺼내면 안 된다고 한 거 기억나지?”
통이 무슨 말이냐 되묻기도 전에 성령연은 품에 숨겨둔 검을 꺼내 화살을 쳐냈다. 곧이어 성문이 열리고 곳곳의 병사들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었다. 성문 입구에는 이미 사병과 몇몇 장군들이 앞장서 성령연을 똑바로 쏘아보고 있었다. 무장한 수백 명의 병사가 금방이라도 궁을 불태울 듯이 굴었음에도 성령연은 태연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대낮에 반란이라니 무엄하구나.”
아슬아슬하게 대치하던 두 무리는 앞서 성문을 무너뜨린 이의 명령에 의해 크게 부딪혔다. 얼마나 준비한 것인지 모를 수많은 사병이 물밀 듯이 몰려와 황실 군대와 맞서는 것을 무료하게 쳐다보며 성령연은 통의 손을 잡았다. 사방에서 칼이 부딪치는 소리와 간간이 성령연이 칼로 화살과 칼 따위를 튕겨내는 소리가 들렸다.
통은 이들이 대체 왜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 것인지는 몰랐으나 그들이 어쨌든 자신이 사랑하는 링위엔을 죽이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아니, 사실 그간 성령연이 통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어떤 짓을 했는지 잘 알았다. 통은 성령연이 어떤 짓을 했는지는 상관없었다. 비록 그의 처지가 갇혀있는 새와 다름없는 신세임을 알았으나 성령연은 그를 귀애했고, 아껴주었기에 싫지 않았다.
오히려 통 또한 성령연을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했으며, 그가 없는 세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지금 이들을 죽이지 않아 다음에 또 죽이러 오면 어떡하지? 게다가 한눈에 보아도 반란군의 숫자가 아군의 숫자보다도 월등히 많았다. 아무리 백전불패의 무제 셩샤오라 하더라도 저 많은 숫자를 이길 수 있을까? 설령 이길 수 있더라도 다칠지 몰랐다. 통은 그의 링위엔의 머리카락 한 올마저도 다른 이에게 줄 생각이 없었다.
“병아리?”
천 너머로도 통의 이마에 붉은 표식이 생긴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날개는 몸을 겹겹이 둘러싼 비단을 뚫고 나와 퍼덕이고 있었으며 통과 성령연의 주변으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통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성령연을 꼭 껴안고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혼례식장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올려둔 통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결연해 보였다.
“너도 마음대로 사람 죽였으니까 이번에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이 병아리가!”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통은 금세 군인들이 뒤엉켜 싸우기 바쁜 중앙에 섰다. 혼례복을 입은 황제의 비가 그것도 날개를 달고 갑작스럽게 전장의 한복판에 서니 잠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반란군을 바라보는 통은 무표정이었으나 왜인지 그들의 ‘폐하’를 닮아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비록 붉은 천으로 가려져 표정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너희들이 내 링위엔을 죽이려고 했어?”
그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본 누군가가 괴물이라고 소리치며 도망가려고 했고, 도망가기도 전에 그는 불에 타올라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아군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고, 적군은 다시금 창과 방패, 화살을 들어 올려 통을 향해 겨누었다. 성령연은 그 모든 것을 위에서 지켜보다 화살을 들어 적군을 겨누었다.
그러나 성령연은 화살을 들 필요조차 없었다. 그것은 한쪽의 무자비한 학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통의 손짓 한 번이면 적군들이 흔적도 없이 타서 사라졌고, 도망가려는 이도 한 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갔다. 성령연은 잡았던 화살과 활을 옆에 다시 세워둔 채 차분히 반란을 진압시키는 통을 보았다. 그가 씌워준 머리 장식도, 그가 벗겨주어야 하는 얼굴을 가린 붉은 천도, 혼례복도 한 점 타지 않았다. 가벼운 손짓과 소매가 한 번 나풀거리는 것만으로 그곳은 불바다가 되었다.
“링위엔. 돌아가자!”
“그래.”
반란을 일으키려던 대신들은 통의 학살에 넋을 잃고 주저앉아 있었고, 링위엔은 피로 얼룩진 아래를 한참이고 쳐다보다 입꼬리를 올렸다.
*
밖은 수십 수백 명이 죽어있음에도 두 사람의 처소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혼례를 올린 첫날이었기에 관례에 따라 비와 황제의 옷과 장식을 담을 함과 술이 차려져 있을 뿐이었다. 통은 얌전히 성령연과 나란히 걷다가 둘만 남게 되자 침대에 앉아 성령연의 손길을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며 성령연은 옅게 웃으며 마침내 옥이 주렁주렁 달린 머리 장식을 조심스레 벗겨냈다. 면류관에 달린 장식들이 두 사람을 가두자 이 세상에 두 사람만 남은 것 같았다. 성령연은 사랑스러운 제 ‘통비’의 얼굴을 가린 붉은 천을 조심스럽게 벗겨내었고, 마침내 드러난 붉은 눈과 이마에 난 붉은 표식에 입을 맞추었다. 숨김없이 팔락거리는 커다란 날개는 파닥거리며 여실히 그의 기분을 알려 주었다.
“샤오통, 나랑 영원히 살자.”
“당연하지, 파혼은 안 돼!”
“파혼이라니 그런 못된 단어는 어디서 배운 거지?”
성령연은 통의 양 볼을 두 손에 가두었다. 통은 입꼬리를 올려 활짝 웃으며 입을 맞추었다. 고개가 천천히 돌아간 탓에 머리에 두른 비단이 침대로 천천히 떨어졌다.
밖에서 내리는 하얀 눈이 불에 타다 남은 재 같았다. 통은 하얀 재가 창문을 타고 들어와 활짝 핀 하얀 꽃 위로 사뿐사뿐 떨어지는 것과 제 입술에 떨어지는 성령연의 부드럽고 차가운 입술을 입안 가득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