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Hisaishi Joe - 첫사랑 (드라마 태왕사신기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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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콤플렉스
7.
아스팔트 콤플렉스
#여행 #완결이후 #비행_수칙을_준수합시다 #PRAY_FOR_뚜벅이
강사 @rqT9PbJlNTR8DoZ
시작 전 주의: 1.0 기준 완결 이후 시점.
설정이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날조캐붕뽕짝이 많습니다….
[제목: 불닭 날아가는 거 본 썰 푼다.]
한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다. 점점 더 첨단으로 나아가는 정보화 사회에서 인터넷 사이트는 파도에 이는 포말처럼 많았고, 게시판은 그 안의 플랑크톤만큼 많았으며 올라오는 글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많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쏟아 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어서, 그 욕망이 뒤섞인 쓰레기통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는 일은 고양이의 등에서 조금 특별한 털 한 가닥을 찾는 것과 같다. 그런고로, 불닭에 대한 ‘썰’을 빙자한 횡설수설한 글은 예컨대 20세기 후반에서나 조금 주목받았던 UFO 따위의 목격담과 비슷한 별 볼 일 없는 이야기로 취급되었고 이슈가 되기에는 매우 부족했다. 하지만 그 날 따라 한가해서 휴대전화 액정을 토독대며 두드리던 핑치엔루에게 그 제목은 일종의, 하늘에서 난데없이 떨어진 번개처럼 그녀의 각막으로 와서 내리꽂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늘을 나는 그 ‘불닭’이 그녀의 직장 동료인 게 분명해서였다. 아무리 특능을 보유한 사람들의 존재가 밝혀졌다고 해도, 아직 공공연한 사용은 조심스러운 시점에서 발견된 목격담은 금세 선후과를 태풍처럼 휩쓸고 술렁이게 만들었다.
핑치엔루를 포함한 선후과의 선량한 부하 직원들이 종종 쉬엔지의 불타는 날개를 보고 불닭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자연스러운 발상을 가로막은 건 불닭의 앞에서 그를 불닭이라고 부르는 게 자살 행위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짐작이었다. 불닭 소리를 듣는 본인이야 그 정도 별명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화를 내지 않더라도 아주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어딜 봐서 ‘불닭’ 이냐고 보란 듯이 날개를 펼쳐 실내 기물이 파손될 확률은 아주 높았다.- 괜스레 말을 고르게 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쉬엔지가 전 책임 협의를 지고 이공국의 계약서에 사인한 제출한 남자, 대마두 겸 인황 폐하인 그분에게 있다.
종종 이공국에 가르침을 하사하시는 인황 폐하께서 쉬엔지가 불닭이라 불리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할지, 혹은 관심도 없을지는 이공국 직원들로서 알 도리가 없다. 인황 폐하께서 신경쓰는 쉬엔지의 안위에 그의 멋진 이미지까지 포함되어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미지 앞에서는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게 제일이기에 쉬엔지를 불닭이라 섣부르게 칭하는 것보다야 금언이 나았다. 하지만 ‘불닭’이라고 제목부터 당당하게 박아둔 게시글을 앞에 두고서는 제아무리 샤오정이어도 다르게 말할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핑치엔루가 차마 쉬엔지에게 말하지 못하고 꽁지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달려와 내민 인터넷 페이지는 어렵지 않게 삭제 처리됐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 샤오정은 쉬엔지에게 한 번쯤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매운 의미에서의 불닭이 아닌 정말 활활 타는 조류가 되어서 그가 날아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아. 그걸 본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쉬엔지의 태평한 대답은 샤오정과, 그 옆에서 속을 졸이던 핑치엔루의 마음을 거의 갈가리 찢어버렸다. 날개가 간지러워서 날았어요. 졸인 속이 무색하게 시원하고 뻔뻔한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은 덩달아 차갑게 식었다. 등으로 흘리던 땀까지 말끔하게 말라버려서, 이유를 묻는 대신 서로 시선을 마주친 후에 샤오정은 쉬엔지에게 사유서를 제출하게 하는 일을 포기했다. 세상에는 쓸데없이 고 배율인 망원경을 사서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도 존재한다. 단순히 아주 야심한 밤이었다고 해서 그의 날갯짓을 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쉬엔지가 가진 드물게도 순진한 착각일 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걸 쉬엔지와, 그의 보호자인지 피보호자인지 모를 셩링위엔에게 설명하기에는 샤오정의 남은 머리카락 두어 가닥이 벌써부터 시들시들 기운을 잃어가는 것이 영 무리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한숨만 푹푹 내쉬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샤오정의 빛나는 뒤통수를 보며 쉬엔지는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차마 이유를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태평하고 무신경한 것처럼 군 게 제대로 통해서 다행이었다.
지난밤 갑작스레 날아간 이유를 돌아보자면, 쉬엔지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부터 생각해내야 했다. 쉬엔지는 종종 아주 멀리로 날아가고 싶었다. 쉬엔지를 부르는 것은 가끔은 바람 냄새였고, 또 가끔은 아주 희미한 살 내음이었으며 때때로 꽃향기이기도 했다. 기억은 희미한 향취를 남긴다. 대부분이 바스러진 가루로 남아서 굴러다니는 기억이라도 완전히 잊히기 전까지는 어떤 흔적으로든 반드시 사람을 과거로 끌어당겼다. 쉬엔지는 자신의 등에 멀쩡히, 아주 커다란 날개가 달려있음에도 그러한 인력에는 속수무책이라, 당기는 대로 이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분명하게 떠오르지도 않는 그 가느다란 꽃 향기를 따라서 머릿속에 잘 눌러 말린 압화 책갈피가 꽂혀있었던 것처럼 어스름한 기억이 피었다. 그래서 쉬엔지는 늘 멀리로 날아가고 싶었고,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었으며, 자신이 무엇을 찾아 떠나고 싶은 것인지 알고 싶었다.
요란한 것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자신의 욕망을 뒷전으로 미루어두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쉬엔지였기 때문에 그러한 바람에 따라 떠날 마음을 먹었던 적도 있었다. 날아가고 싶다는 마음과는 다르게 그는 차를 빌렸었는데 핸들에 손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쉬엔지가 깨달은 게 있다면, 정말 그가 가지고 있던 콤플렉스는 여행이나 일탈 따위에 대한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멀리 가고 싶은 마음도, 떠나고 싶은 마음도 모두 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 쉬엔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가?
“링위엔.”
소파에 그림처럼 앉아있던 사내가 쉬엔지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에게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보유 여부를 의심하는 학습 특능을 백분 발휘하기라도 하려는지 텔레비전을 켜 놓고 뉴스를 보던 링위엔이 말이 없는 쉬엔지를 보며 웃었다. 희미하게 휘어진 눈매와 드리워진 속눈썹. 핏기없이 흰 피부와 둥글게 올라간 입꼬리. 너무 밝은 전기 불빛을 한참 바라보던 셩링위엔을 보자마자 쉬엔지가 카드를 긁어 싹 바꾸어버린 온화한 간접 조명이 빠짐없이 그를 비추었다. 핥듯이 바라보는 쉬엔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마주치는 링위엔의 자비로움은 무슨 장난을 치려고? 하고 묻는 것만 같았다.
링위엔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쉬엔지가 그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쉬엔지는 늘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링위엔의 온 마음을 알고싶었다. 쉬엔지가 오래 바라왔던 것은, 셩링위엔과 함께 떠나는 일이다. 떠난다는 것은 돌아올 자리가 있는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일이다. 그랬기에 둘은 떠날 수 없었다. 쉬엔지는 링위엔 형을 안고서 멀리로 날아가고 싶었고, 그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나서 돌아오고 싶었다. 즐거웠는지에 대한 사소한 물음을 나누고 이마를 맞댄 채 잠들고 싶었다. 쉬엔지는 자신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몰랐던 마음을 알게 된 것이 다시는 없을 행운임을 알아서 당장 입을 떼는 대신 셩링위엔의 곁으로, 좁은 소파에 구겨 앉았다. 흑단같이 쏟아지는 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서 반대쪽 어깨로 몰아버리고 제 자리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을 옹송그려 셩링위엔의 어깨에 기대자 웃음소리를 따라 작은 진동이 울렸다.
쉬엔지는 셩링위엔과 함께인 제 조막만 한 집이 궁궐보다 좋았다. 하지만 정말 ‘궁궐’에 살던 셩링위엔이 쉬엔지의 집에 만족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쉬엔지는 셩링위엔에게 모든 좋은 것들을 주고 싶었지만, 그 좋은 것들이 셩링위엔에게 정말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언제쯤 얻을 수 있을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쉬엔지는 멈추지 않는다. 그는 말없이 얌전하게 눈을 내리감아서 눈꺼풀 아래로, 곱슬진 속눈썹 아래로 불안감을 숨겼다. 셩링위엔이 보던 텔레비전에서는 종종 새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왔는데 어떤 새는 적을 피할 때에 자신의 몸을 숨기는 대신 머리를 땅속에 처박아 자신의 눈앞에서 적을 치웠다. 눈을 감고, 머리를 처박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적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굴다 종내에는 사라진 새가 있다. 그리고 그 새와 쉬엔지는 분명하게 다르다. 적어도 쉬엔지는 세상에서 가장 학력이 높은 새니까. 사소한 불안감이나 두려움 앞에서 뒷걸음치지 않았다. 셩링위엔을 그런 흔들린 획들의 나열로 표현하기에는 쉬엔지가 제 속에서 다 끄집어내지 못해 아직 전해지지 않은 사랑이 더 많았다. 한참을 링위엔의 어깨에 기댄 채 몸을 부풀리기라도 하듯 숨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링위엔. 우리 여행을 가자.”
“그럴까, 샤오지야.”
질문보다도 선언에 가까운 말에 나긋한 대답이 선뜻 돌아오자 쉬엔지는 괜히 기대있던 어깨에 제 뺨을 비볐다. 마음이 작은 대답에도 쉽게 부풀었다. 쉬엔지는 하나씩 주워섬기듯 말을 이었다. 텔레비전에 마침맞게 나오는 지도를 보며 자리를 하나씩 짚었다. 여기에 가자. 그래. 저기도 가야 해. 그러자. 가서 맛있는 것을 먹자. 그럴까. 쉬엔지가 말하는 모든 순간에 셩링위엔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멈추지 않았다. 아주 예전, 배꽃 향기가 나던 시절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럼, 당장 떠나자. 당장? 언제든, 그가 조잘대는 말을 죄 들어주던 인황 폐하의 당황스러움으로는 이미 날개를 꺼내기 3초 전의 총비를 막을 도리가 없다. 쉬엔지는 간신히 두 사람이 나가 설 수 있을 만큼 좁다란 베란다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웃었다. 열린 창문 너머로 온 하늘이 셩링위엔에게 쏟아지는 것 같았다. 분명 별 따위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네온사인이며 전등 불빛이 가득한 하늘이었는데. 인황 폐하는 순순히 총비를 향해 팔을 뻗었고, 총비는 기꺼이 품에 황제를 안고 하늘을 날았다. 아주 멀리까지.
분명 쉬엔지는 자신의 날개가 아주, 혜성이나 별똥별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시선을 끌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일단 거리상 별보다 가깝지 않은가? 쉬엔지가 자신의 마음에 찰 만큼 화려한 광도를 유지하는 건 거의 조명을 단 드론을 띄우는 것과 비슷한 일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날겠다는 데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인세에 존재하지 않았다. 쉬엔지는 선후과가 자신의 목격담을 처리하는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지극히도 사회화된 양심은 말끔하게 내다 버리고 비행을 선택했다. 야간 비행. 얼마간 감미로운 단어의 울림에 샤오지는 꼭 붉은 깃발을 보고 날아가는 투우 새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돌진한다. 길을 따라 여행을 떠났던 아주 오래전, 얼마간은 전생의 일처럼 아득해진 시간에 차를 꼬박 빌리던 사회인은 어디로 사라진지가 오래다. 쉬엔지에게 차가 있었다면 가진 물건을 썩힐 수는 없다는 자본주의적 논리로 운전대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가진 건 두 다리와 두 날개, 그리고 셩링위엔에 대한 사랑밖에 없다는 논리는 무슨 일이 생기든 말든 오밤중에 하늘을 가르는 빌어먹을 낭만주의자를 만들었다.
남명수화인, 주작 족장과 대마두, 거창한 호칭을 가진 두 사람에게 인간이 아스팔트를 발라 잘 닦아둔 길 같은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다.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무엇이든 다 함께 보고 싶은 마음은 둘에게 길이 된다. 애석하게도 가로등도 없는 곳까지 날아갔다가 나란히 미아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을 뻔하기는 했다. 하지만 남몰래 입술도 한 번 비비고 현대 문물에 편승해 무려 ‘길 찾기’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해 돌아오는 시간은 분명 즐거웠다.
다음 날, 아주 예전의 기억보다 기상 시간이 느지막해진 링위엔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출근한 쉬엔지의 머릿속을 차지한 생각은 온통 하나였다. 오늘 밤에는 어디를 가면 좋을까? 셩링위엔을 슬쩍 꼬여서 홍콩에 갈 생각만 가득했던 요망한 새는 어디로 쫓아 보냈는지 모험을 하러 갈 생각에 들뜬 마음만 쉬엔지에게 남았다. 그래서 샤오정이 아주 미심쩍고 흉계를 꾸미는 피카츄의 눈으로 일과 시간 내내 월급 루팡을 시도하는 그를 쳐다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퇴근 시간이 모두의 목전으로 다가왔다. 특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하나도 없었다. 그 어떤 유용한 특능을 가졌더라도 가장 탐나는 능력은 순간이동인 시간이다. 아직 햇볕의 끝자락이 머무르는 저녁나절부터 날개를 펼치기에는 그래도 아직 양심이 남아있는 터라 쉬엔지는 뚜벅뚜벅 걷고, 또 바퀴 위에 몸을 올려서 집으로 향했다. 아주 평범한 사람처럼. 집에 있을 링위엔을 떠올려보자면, 일상에서의 일탈 혹은 비일상이라 정의될 순간만이 아니라 매시간 시간이 쉬엔지에게 특별했다. 한 사람의 존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쿵쿵거리는 비트가 가득했을 법한 음악을 한 곡의 사랑 노래처럼 흥얼거리며 쉬엔지는 현관문에 열쇠를 꽂고 돌렸다. 열쇠가 다 돌아가고 낡아빠진 소리를 내는 문이 열리기도 전에, 안에서 가지를 뻗은 마기가 튀어나왔다. 쉬엔지는 분명 자신이 셩링위엔의 앞에서 손이 빠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우리라 장담했는데, 월등히 빠른 마기의 속도에 단말마를 연상케하는 짧은 비명과 함께 문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집 안은 온통 검은 마기로 뒤덮인 채였다. 아니, 쉬엔지는 자신이 뒤덮인 것인지 혹은 집 안이 뒤덮인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날개를 펴 보려는 순간, 마기가 쉬엔지의 몸을 감싸고 들러붙었다.
“안녕하십니까, 셩링위엔님.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된 까닭은, 귀댁의 쉬 주임이 작일 밤 무허가 비행으로 민간인 목격자를 발생 시켜 혹여나 댁에 어떠한 변고가 있었는지 여쭙고자 함입니다….”
몸을 칭칭 감고, 눈조차 감겨버린 마기가 귀는 가리지 않아 셩링위엔의 유난히 단조로운 목소리는 고스란히 쉬엔지에게 전해졌다. 딱 들어도 링위엔이 할 말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보낸 연락이 분명하다. 그리고 셩링위엔이 잘 쓰지도 않는, 하지만 현대인으로서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련한 휴대전화로 개인 연락을 보낼 인물은 딱 한 사람뿐이다. 샤오 주임! 이를 벅벅 가는 쉬엔지의 뺨에 미적지근한 온기가 닿았다. 마기와 다른 온도에 쉬엔지는 괜히 감은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 … 링위엔?”
“응, 샤오지야.”
쉬엔지는 곧장 셩링위엔에게 풀어달라 조르는 대신, 어른스러운 새답게 가만 고민했다. 여전히 제 체온보다 낮고, 심박도 늦은 손길은 분명 셩링위엔의 것이다. 뺨을 톡톡, 초를 세기라도 하듯 건드리는 움직임을 보자면 고작 변고를 여쭙는 문자를 받은 것으로 심사가 뒤틀린 것은 아닐 테다. 기껏해야 놀리려는 게 분명한데, 쉬엔지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오늘은 떠나자고 해도 들어주지 않을 거지?”
쉬엔지가 짐짓 토라진 목소리를 꾸며냈음에도 돌아오는 건 나직한 웃음소리뿐이다. 마기는 요만큼도 헐렁해지지 않았다. 쉬엔지는 눈을 감기고 그 위를 덮인 마기 너머에 있을 셩링위엔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손수 묶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길게 늘어뜨려져 있을 머리카락과 헐렁한 실내복. 쉬엔지가 분명 셩링위엔의 몫으로 따로 맞추어 산 옷이 있음에도 링위엔은 가림 없이 손에 잡히는 옷가지를 걸쳤기 때문에 툭하면 얼마간 품이 남은 쉬엔지의 옷을 입기 일쑤였다. 혈색이 천천히 돌아와 붉어진 손끝이며 입술을 떠올리며 쉬엔지는 슬쩍 얼굴을 붉혔다. 어느새 자리를 옮겨서 쉬엔지의 이마 위로 드리워진 짧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예민하게 전해졌다. 손톱 끝으로 둥글고 곧은 이마를 톡 건드리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돌돌 말며 살짝 잡아당기는 장난스러움에 쉬엔지는 내밀었던 입술을 제자리로 되돌렸다. 입에서 나올 것이 남아있다면 여전히 어린애 투정 같은 말임을 알았다. 그래서 쉬엔지는 괜히 몸을 뒤틀며 더욱 어리광을 부렸다.
“같이 여행 가기로 했으면서.”
치사하게 반격할 틈도 주지 않고 -쉬엔지가 정말 할 마음이 있는지와는 별개로- 마기로 주작 족장을 칭칭 감아둔 장본인은 분명 쉬엔지의 앞에 있다. 뻔뻔스럽게도 서서 전리품을 얻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만지고 있는 게 분명한데 대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이마에서 머리카락으로 올라가 머리를 가만 쓰다듬던 셩링위엔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쉬엔지는 그때를 틈타 계속 말을 이었다. 어제 셩링위엔의 어깨에 기대어 했던 말들을 반복했다. 너랑 같이 여행 가고 싶어, 링위엔.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 정말 같이 안 갈 거야? 조르는 목소리에 셩링위엔이 약하다는 걸 여실히 아는 목소리였다. 쉬엔지가 아무리 칭칭 묶인 몸을 흔들어도 셩링위엔의 마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아까보다 조금은 단조로움을 벗어던진 채로 셩링위엔이 말했다.
“귀댁에 무슨 일이 발생했다면 연락해 주십시오. 쉬 주임에게는 쓰지 않은 휴가가…, 한 아름 쌓여있다는데? 샤오지.”
링위엔의 말이 끝나자마자 쉬엔지는 눈을 번쩍 떴다. 휴가? 쉬엔지는 놀 수 있는 기회라면 놓치지 않을 마음이 가득했기에 분명 취업할 때에 휴가 규정을 확인했지만 정작 챙기기에는 분주한 이공국 생활을 보내왔다. 깜짝 선물을 받은 것처럼 활짝 웃자, 언제 마기가 눈을 가리고 몸을 묶고 있었냐는 듯 모든 기운은 말끔하게 사라진 후였다. 눈 앞의 셩링위엔은 웃고 있었다. 쉬엔지도 마찬가지였다. 차를 빌리고, 숙소를 구해서 여행을 가자. 그래. 현대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쉬엔지에게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대학 시절에 딴 면허가 있다. 차를 사지 않아서 얼마나 오래 썩어왔는지와는 별개로, 있던 면허가 고대의 기억이 떠올랐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피어있는 들꽃 하나 볼 틈 없이 빠르게 달려도 좋았다. 이것 좀 봐, 했을 때 대답해줄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쉬엔지는 손을 뻗어 셩링위엔이 제게 그랬던 것처럼 뺨을 감쌌다.
“차는…, 큰 게 좋겠지?”
속마음을 숨기기보다는 온통 드러내기 바쁜 뻔뻔스러운 말에도 셩링위엔은 쉬엔지를 보며 마주 웃었다. 그 웃음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