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몽중혼(夢中婚)

1.

​몽중혼(夢中婚)

#선령일상 #대혼 #황제수 #통비공

따개 @lovingher0921

 이 고약한 잠버릇에 적응할 수는 있는 걸까?

 창문 밖에서 비쳐 들어오는 색색깔의 불빛이 천장에 은은하게 일렁이는 것을 올려다보며, 셩링위엔은 불현듯 생각했다.

 

함께 자는 사람을 바디필로우로 여기기라도 하는 건지 한쪽 팔이나 발로 내리누른다던가, 왠지 모르게 추워서 눈을 떠보면 어느새 이불을 끌어안고 바람을 핀다던가. 보통 성인이 되면 대부분의 잠버릇은 사라지는 게 정상 아닌가? 얼마 전 본 TV 프로그램 <세계의 동물>에서 졸다가 둥지 밖으로 떨어지는 새가 떠올라 조금 웃음이 나왔다.

 

 정말이지, 지금 당장 치킨집 사장에게 팔아넘겨 튀김옷을 입힌다 해도 깨지 않을 성 싶었다. 셩링위엔은 어스름 너머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잘 때만 각방을 쓰자,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한 적도 벌써 여러 번이었다.

 

 그런 마음은 아침에 침대에서 함께 빈둥거리다보면 변덕스럽게도 금방 가라앉았다. 셩링위엔은 아침 햇살 아래서 쉬엔지의 푹 잠든 얼굴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고, 손을 꼭 잡아 주면 잠결에 맞잡은 채 ‘5분만’ 하고 칭얼거리는 목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했다.

 

 그러고 있자면 문득, 3천년 전 도릉궁의 침실에서 함께 잠들고 일어나던 기억이 떠올랐다.

 

 스마트폰같은 밤잠을 방해하는 문명의 이기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소년 폐하가 잘 준비를 하면 검령도 대부분 별다른 칭얼거림 없이 곧바로 따라 잠들었다.

 

 침실 안으로 차가운 공기가 짓쳐들어오는 새벽, 새가 우는 소리에 눈을 뜨면 셩링위엔은 연결된 감각을 통해 아직 단잠에 빠져있는 검령을 느낄 수 있었다. 검령이 잠에서 깰 때까지 기다리면서, 셩링위엔은 색색 규칙적으로 내쉬는 숨소리를 듣고 그가 자신의 바로 옆에 누워 잠들어있는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었다.

 

 검령이 푹 잠든 그 시간은 그가 자신의 아름다운 생각을 비교적 가장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때였다. 검령이 이미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리고… 자신과 혼인을 했더라면.

 

“……링위엔?”

 

생각에 잠겨있느라 어느새 쉬엔지가 눈을 뜬 줄도 몰랐던 셩링위엔은 목소리를 듣고 퍼뜩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셩링위엔은 몸을 옆으로 돌려 누워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쉬엔지의 뺨을 손등으로 살살 쓸어내렸다.

 

 옛날 사람인 폐하를 따라 억지로 일찍 자는 습관을 들이게 된 쉬엔지는 어느 순간부터 알람도 잘 설정하지 않게 되었다. 셩링위엔이 먼저 일어나 그를 깨워주는 편이었지만, 혹시라도 알람을 맞췄다가 더 잘 수도 있는 사람을 깨우게 될까봐 걱정해서였다.

 

 쉬엔지의 그런 배려를 당연히 모를 리가 없는 셩링위엔은 종종 의도적으로 그보다 더 오래 늦잠 자는 척을 하기도 했다. 그의 병아리가 뿌듯한듯 바라보는 시선을 몰래 즐기면서.

 

 “웬일로 깨우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어났어, 좀 더 자.”

“…또 내 잠버릇 때문에 일찍 깬 거야?”

 

 족장께서는 염치를 팔아 눈치와 맞바꾸셨군.

 

 셩링위엔은 쉬엔지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다가가 그를 품에 끌어안았다.

 

 “쉿, 착하지……”

 

 천천히 등을 토닥이며 쓸어내리는 감각에 쉬엔지의 눈이 수명이 거의 다 된 조명처럼 불규칙적으로 느릿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밝고 따뜻한 색의 그 눈을 들여다보자 조금 전 빠져있던 생각을 마저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셩링위엔의 마음 속에서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지금은 그를 직접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으니, 이 행복은 분명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리라. 하지만 당시에 결실을 맺지 못했던 소망이 약간의 집착이 되어 내내 가슴에 맺혀 있었고,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해소할 수 있게 되길 바랐다.

 

 이윽고 쉬엔지의 등에 닿은 셩링위엔의 손에서 마기를 숨긴 검은 안개가 피어나 그에게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

 

 쉬엔지는 꿈 속에서 눈을 떴다. 정확히는 셩링위엔이 만들어낸 환상 속이었지만, 마기가 숨겨져있기도 했고 방금 전까지 다시 잠들듯 말듯 몽롱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사실을 곧바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쩐지 눈앞이 온통 새빨갛게 보였다. 붉은 시야가 머리에 씌워진 천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 걷어올리자, 쉬엔지는 자신이 가마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십여 명이 붙어 운반하는 가마에는 아마 그가 봐온 것들 중 가장 사치스러운 수준일 보석과 장식들이 가마의 움직임에 따라 찰랑거리고 있었다.

 

 쉬엔지는 지금 이게 어떤 상황인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어리둥절하게 계속 바깥을 내다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가마로부터 일정 거리를 두고 길 양옆에 서서 들뜬 표정으로 자신이 속한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다.

 

 가마는 인파를 뚫고 천천히 궁문으로 향했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부드럽게 멈춰섰다.

 

 가마에서 내린 쉬엔지가 선 곳은 바로 도릉궁이었다. 궁 안은 평소와 다르게 곳곳이 꾸며져 있어 귀한 손님이라도 맞이하는듯 기합이 잔뜩 들어가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시중인을 보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딜 가는 거죠?”

 

 그러자 시중인은 까닭 모를 미소를 내비치고는 그의 흐트러진 의관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정돈해주었다.

 

“책봉(冊封)식 장소까지 소인이 모시겠습니다.”

 책봉?

 

 안내를 따라 간 곳에서 쉬엔지는 얼떨떨하게 주변이 이끄는 대로 하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 지위와 칭호 하나를 받아들게 되었다.

 

 장소 선정이 영 이상하긴 해도, 자신을 주작 족장에 봉하는 의식이라도 되는 건가 생각하 던 쉬엔지는 책봉식에서 자신을 지칭하는 단어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족장은 무슨, 그의 앞에 떨어진 표현은 바로 다름 아닌 ‘황후’였다.

 

 다소 생경한 그 단어에 놀라기도 잠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는듯 행동하고 있었기에 쉬엔지는 곧바로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점점 주위의 상 황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원래 꿈이란 종종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흘러가는 것이기도 하고.

 

 책봉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시 어딘가로 이동하게 되었고, 온통 무겁고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움직이느라 그랬는지 아니면 일정하게 흔들리는 가마의 움직임에 노곤해져서 그랬는지 쉬엔지는 그만 깜빡 졸고 말았다.

 

 조느라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뒤, 그는 천장이 높은 중후한 느낌의 침실 안에 도착해 있었다. 천 너머로 누군가 앞에 앉아 그가 깨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한 손이 다가와 쉬엔지의 얼굴 위에 덮인 천을 위로 살짝 들어올렸다. 쉬엔지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오던 잠이 완전히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이런 꿈을 꾼다면 상대는 달리 누가 있겠는가. 그러니 예상 밖이라는듯 반응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셩링위엔은 그 옛날, 검령과 함께 궁에서 생활했던 때처럼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그 얼굴을 그리워했던 쉬엔지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새겨넣기라도 할 기세로 눈 한번 깜빡이지도 않고 홀린듯이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소년 황제의 옷도 쉬엔지가 입은 것처럼 온통 붉고, 화려하고, 무거웠다. 특별한 의식이라도 있는 날이 아니면 그가 절대로 입지 않을 종류의 옷이었다.

 

 “황후께서는 부끄러움이 별로 없는 편이군.”

“…뭐?”

“그렇게 열렬한 반응이라니, 짐은 어쩐지 좀 더워졌소.”

 

 셩링위엔은 놀리듯 손부채질을 하다가 쉬엔지의 어이없다는 시선에 윙크로 응수했다.

 

 이래도 되는 거야? 하고 묻는 듯한 쉬엔지의 눈빛에 셩링위엔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안 될 게 뭐 있냐는듯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번에 내가 네게 그랬었지.”

 

셩링위엔은 그의 턱끝을 손으로 살짝 쥐고 들어올렸다.

 

“아직 너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선포를 하지 못했다고 말야. 지난 번 환상에서 한번 시도하다 말았으니, 이번에라도 제대로 다시 해보고 싶었어.”

 

……아, 그거.

 

 쉬엔지는 셩링위엔이 그 말을 했던 때를 돌이켜보다 울컥, 서러운 감정이 다시 치밀었다. 당시 청동정 위에서 제멋대로인 폐하 때문에 잔뜩 이골이 나 그에게 이혼하자고 외쳤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는데, 은혜에 감사하게도 방금 전 말 덕분에 쉬엔지는 자신이 그의 환상 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비록 진짜는 아니지만, 옛날의 모든 종족을 이 대혼(大婚)에 초대해 지켜보고 축하하도록 했어. 일생 동안 나와 함께할 비는 너 하나 뿐이야, 샤오지.”

 

 만사에 착실하신 폐하께서는 병을 주고 나서 곧바로 약을 주셨다. 생각해보니 정말, 궁으로 오는 길에 보였던 무리는 여러 종족이 섞여있었다.

 

 대를 잇지 못하는 정비(正妃)라니. 쉬엔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셩링위엔이 정성껏 꾸며놓은 역할극에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어차피 환상 속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든 셩링위엔에게 곧바로 들키고 만다.

 

 “보위는 물려줄 거니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니.”

 

 그의 말대로라면 이 환상은, 요동치는 적연 때문에 결국 일족이 멸망하고 자신조차 생과 사의 문턱에 끼어버린 실제 과거와는 다르게, 주작을 대표하여 인황과 맺어진, 정말로 꿈에서조차 선뜻 그려보기 힘들었던 바로 그 상황이었다. 쉬엔지는 그의 검령이었을 때 셩링위엔이 자신을 두고 장가를 들지 않을까 못내 두려워하느라 그 역할에 자신을 대입해 볼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발간 촛불빛이 비친 셩링위엔의 얼굴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상기되어보였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술잔에 술을 두 번 따르더니, 쉬엔지에게 한 잔을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쉬엔지가 잔을 잡은 쪽 팔에 자신의 팔을 한번 감아 팔짱을 꼈다.

 

 “마셔봐, 합환주야.”

 

 쉬엔지는 건네받은 잔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투명하고 맑은 술을 한번에 들이켰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술의 느낌에 다소간 정말로 취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셩링위엔도 웃으며 잔을 들어 술을 입 안에 머금었다.

 

“링위엔, 나…”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에 닿았고, 그 사이로 미지근하게 데워진 술이 쏟아져 들어왔다. 쉬엔지는 갑작스레 침범해온 셩링위엔에게 언제나 그래왔듯 얌전히 속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큼, 어쨌든 합환주같은 의미가 담긴 술은 되도록이면 쏟지 않고 한번에 다 마시는 편이 좋기도 하고.

 

 “이건 내 소망을 네가 엿본 환상인 거야, 아니면…”

“나의 바람이었어.”

 

 셩링위엔은 마주한 팔을 풀고 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면서 미소지었다.

 

“네가 보고 듣지 못한 수많은 내 생각 중의 하나였지.”

 

쉬엔지는 그 말에 머릿속이 조금 멍해졌다. 자신이 검령이었을 때,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의 감각이나 생각을 차단하고 지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고, 그래서 내심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자신과 비슷한 종류의 생각일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몰랐던 그의 시간 중 대부분이 정말 이런 환상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어떤 생각들이었는지 궁금해?”

 

 놓쳤던 정신을 다잡고 다시 바라보자, 어느새 셩링위엔은 지금과 같이 다 자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손 안에 쥔 잔의 크기가 방금 전에 비해 훨씬 작게 느껴졌다.

 

 턱을 괴고 쉬엔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황제의 새까만 눈에 작은 별 몇 개가 총총 떠있었 다. 침실 한 켠에 놓인 길다란 조명, 탁자 위 촛불, 그리고 그의 앞에 있는 가장 빛나는 한 사람.

 

“응, 궁금해. 애초에, 너는 이렇게 환상을 통하면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잖아.”

 

투덜거리는 쉬엔지의 말에 셩링위엔은 고개를 조금 옆으로 기울였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한번에 다 먹으려 들어서야 소용없지.”

 

 셩링위엔은 일어나 그의 손을 잡고 침대로 다가가 함께 앉았다.

 

“천천히 하나씩, 또 하나씩 보여줄게.”

“…정말?”

“그래, 병아리가 내 말을 잘 듣는다면 칭찬 도장 대신으로.”

 

 칭찬 도장이라니, ‘참 잘했어요’같은 걸 말하는 건가?

 

새삼 폐하의 현대 문물 습득 속도는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쉬엔지는 다른 한쪽 손도 마저 맞잡고 셩링위엔을 침대 위로 서서히 기울이듯 눕혔다. 그러는 사이 아슬아슬하게 머리에 걸쳐져있던 붉은 천은 셩링위엔의 얼굴 옆으로 감싸듯 떨어졌다.

 

“황상께서는 부인의 말을 잘 들어야 가정이 화목하다는 말도 못들어보셨는지?”

“언제는 남편이라며?”

“어쨌든 네가 만든 이곳에서는 그렇잖아.”

“그야 그렇지.”

 

 말하고 나자 둘 다 조금 어처구니가 없어졌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막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이후에 해야할 일이란 뭐가 있겠는가. 환상 속이라 이런저런 제약도 훨씬 덜하겠다, 멋대로 끌고 들어온 사람의 소원이 풀렸으니 다른 한쪽의 욕망도 해결해주는 게 공평했다.

 

 환상이 걷히자, 쉬엔지는 눈앞의 사람을 보고 어쩐지 목이 조금 메었다.

 

“난……”

“응, 샤오지.”

“나는 욕심이 많아.”

 

 난데없는 그 말에 셩링위엔은 어리둥절해했다가 자신이 일전에 했던 말과 상반되는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곧바로 실소가 나왔다.

 

“그건, 나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인가?”

 

 셩링위엔의 목소리에는 그의 도려가 또 어떤 생각 외의 대답을 해서 즐거움을 줄까 기대하는 기색이 묻어나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쉬엔지는 멋쩍은듯 뒷목을 조금 긁적이다, 말을 고르느라 몇 번이나 망설였다.

 

“꿈 속 결혼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셩링위엔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꿈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건……

 

“현실에서도… 너랑 식을 올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고, 신혼여행도 가고. 그러고 싶어.”

 

 두 사람은 이미 둘만의 둥지를 틀어 그 안에서 함께 먹고 자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 이미 부부나 다름없었고, 주위에서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둘의 관계를 짐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 와 결혼이라 하면… 어째 좀 순서가 뒤바뀐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셩링위엔의 큰 미인이 적었던 50개의 버킷리스트는 줄어드는 속도보다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고, 유행하는 것이나 남들이 하는 것이라면 한번씩은 다 해봐야하는 성미 때문인지 어느새 결혼식과 신혼여행도 그 몰래 당연한듯 목록에 끼워넣어져 있었다.

 

 셩링위엔은 쉬엔지와 함께 이공국 동료들의 경조사에 몇 번 참석한 적 있는 덕에, 현대의 예식은 어떤지 대충 알고 있는 편이었다. 신랑측과 신부측 사람들이 양쪽을 각각 채우며 앉아 있고, 초대객들이 입장하는 신랑과 신부를 향해 축하 갈채를 보내며, 주례의 축사와 함께 결혼식의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평생의 사랑을 맹세한다. 핵심적인 내용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당연하게도 황제의 대혼보다는 훨씬 간소화된 형태였다.

 

 가장 다른 점을 찾는다면… 혈연, 학연, 지연 등 온갖 곳에서 맺어진 ‘개인적인’ 인연들로 객석이 채워져있다는 점이었다. 이공국에서의 여러 활동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셩링위엔에게도 분명 축하하러 와주는 사람들이 잔뜩 있을 것이다. 예전의 동천에서 함께했던 사람들만큼 가깝고 친근한 사이는 아닐지라도, 더 이상 인황으로서가 아닌 그저 개인 대 개인으로서 쌓은 관계는 그에게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쉬엔지의 ‘가족’이 그의 커밍아웃과 셩링위엔을 받아들일지 어떨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렴 어떨까.

 

“좋아. 뜻하시는 대로.”

 

 3천년이 지나도 식지 않는 마음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열화와 같았다

bottom of page